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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상림의 다람쥐 관찰기
작성자 : 관리자(admin)   0         2021-07-11 09:13:35     163

함양상림의 다람쥐 관찰기

 

한줄기 강바람이 휘몰아친다. 천년교 옆 갈참나무 잎이 뒤집혀 하얀 물결처럼 펄럭인다. 상림에는 거대한 참나무가 많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토리는 시간차를 두고 거의 한 달 동안 떨어져 내린다. 9월 말에서 10월 초가 절정이다. 이때가 풍요로운 다람쥐의 계절이다. 2016년 10월 6일 숲 북쪽의 물레방아 앞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다람쥐 한 마리를 본다. 단단한 이빨로 도토리의 껍질을 잘도 까먹는다. 지켜보고 있으니 양손으로 껍질을 깐 도토리를 들고 쪼르르 참나무 위로 올라간다. 도토리는 밤이나 호두에 비하면 쉬운 먹잇감이다.

 
◀햇도토리를 까먹고 있는 다람쥐 (2016. 10. 6)
▶가을부터 다음 봄까지 다람쥐의 식량이 되는 도토리


껍질이 단단한 견과류는 많은 양분을 담고 있어 설치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식량이다. 설치류의 이빨은 대략 6천만 년 전부터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견과류는 먹히지 않으려고 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감쌌고, 설치류는 이빨을 더욱 예리하게 단련했다. 끊임없이 방어와 공격을 하면서 공진화해 온 것이다. 설치류가 나타나기 전에 참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같은 견과류의 조상은 날개가 달린 작은 씨의 형태를 가졌다고 한다. 그전에는 씨를 보호하는 단단한 껍질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진화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다람쥐는 식량을 얻고 도토리는 후손을 퍼뜨린다. 이 과정은 목숨을 건 전쟁과도 같다. 다람쥐는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고 참나무는 씨앗을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충돌하지만, 결국엔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다람쥐가 나중에 먹으려고 가져다가 묻어놓은 도토리가 숲 곳곳에서 싹을 틔우며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어 핸슨이 쓴 『씨앗의 승리』에는 이렇게 멋진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다람쥐는 겨울에 의식이 반쯤 깨어 있는 상태의 잠을 잔다고 한다. 이것을 가수면이라 부른다. 5년 동안 상림에서 찍은 다람쥐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12월부터 1월 사이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2월이 되어서야 숲에서 귀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겨우내 다람쥐를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유였나보다.

다람쥐는 상림 숲에서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8년 4월 중순 먹을 것을 찾아 숲속을 뒤지는 호랑지빠귀를 쫓아내는 것을 본다. 춘궁기의 먹이 경쟁이다. 이 시기에 다람쥐는 숲을 헤집어서 다양한 열매를 찾아 먹기 바쁘다. 2020년 3월 21일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입에 무언가 볼록하게 물고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간다. 나무 위에서 꺼내 먹는 것을 자세히 보니 도토리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에서 내려와 근처 바위 위에서 또 두 손으로 도토리를 갉아 먹기 시작한다. 계속 사진을 찍으며 지켜보니 반쯤 남은 것을 버리고 가버린다. 3월 말이면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시기이다. “다람쥐는 이 배고픈 시기에 아까운 먹이를 왜 버리고 갔을까?” “혹 다람쥐의 귀한 식사 시간을 방해한 탓일까?” 다람쥐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먹을 것이 귀한 시기 도토리를 입에 넣고 나무에 올라 갉아 먹고 있는 다람쥐 (2020. 3. 21)


2021년 5월 3일 맑고 쾌청한 날 오후 다볕당 바로 뒤 졸참나무에서 다람쥐 새끼를 발견했다. 이 졸참나무 중간쯤에 세로로 묘하게 찢어져 가지에 살짝 가린 구멍이 있는데 이게 다람쥐 굴일 거라고 생각했다. 2020년 5월 2일에도 이 나무에서 노는 아기 다람쥐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굵은 줄기를 타고 놀기도 하고 나뭇가지 뒤에 숨어서 빼꼼 내려다 보기도 했다.


다볕당 바로 뒤 굴참나무 가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다람쥐 (2020. 5. 2)


숲을 한 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한 번 더 다볕당 뒤 졸참나무를 찾았다. 그네 있는 쪽 졸참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있는 조그만 다람쥐를 본다. 다볕당에서 그네 있는 쪽으로 두 번째 졸참나무이다. 그런데 다볕당 바로 뒤가 아니라 이 나무에 다람쥐 굴이 있다. “활동하는 다람쥐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여태 모르고 지나쳤구나!”

주변에 보니 새끼 다람쥐가 더 있다. 쪼르르 달려오더니 그루터기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 좀 있으니 네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나 그 위쪽 딱따구리가 판 듯한 동그란 구멍 속으로 차례대로 들어간다. 서둘러 굴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아래쪽 넓은 그루터기에서 한 마리가 고개를 쏙 내민다. 한 마리가 그 위쪽으로 와서 동시에 쳐다본다. 멋진 장면이 연출 됐다. 위에 동그란 구멍이 꽉 차게 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오호! 귀염~ 뽀짝의 순간 포착이다.

 
◀다볕당 곁 졸참나무 위쪽 동그란 굴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아기 다람쥐(2021. 5. 3)
▶서둘러 동그란 굴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다람쥐 가족(2021. 5. 3)


털이 희끗하고 살이 빠진 녀석이 큰 그루터기 위에서 앞발을 모은 채 입을 닦는듯한 행동을 한참 동안 하고 있다. 아기 다람쥐들의 어미로 보인다. 혓바닥에 침을 묻혀서 손과 얼굴 주위를 열심히 닦는다. 처음엔 먹이를 먹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빈손이다. 세수를 하는 것인지 어떠한 행동인지 궁금하다.

다볕당 곁 졸참나무 고목은 총 네 그루다. 윗부분에서 가지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굴에서 나온 다람쥐들은 졸참나무 숲 꼭대기를 마음대로 옮겨 다닌다. 작은 가지 끝에서 저쪽 가지로 훌쩍 뛰어서 건너가곤 한다. 네 그루의 졸참나무 고목은 이 굴에 사는 다람쥐들의 집 근처 놀이터인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지역의 원로 사진작가 선생님이 작년 5월 초에 아기 다람쥐들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대죽교 근처에 있는 다른 형태의 다람쥐 굴이었다. “그러면 5월 초에만 다람쥐들이 굴에서 고개를 쏙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이때의 새끼 다람쥐는 아마도 작년 가을쯤에 태어나서 겨울잠도 자고 하면서 이만큼 자란 것일 테다. 그러다가 새잎이 나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이 되면 바깥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2021년 5월 4일 지역 초등학생들과 생태 활동을 하면서 다볕당 졸참나무 굴 주변에서 노는 아기 다람쥐들을 발견했다. 다음날 오전 11시쯤 나가서 영상 촬영을 했다. 졸참나무 앞에 도착하니 다람쥐 한 마리가 튀어나온 그루터기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다. 5월 답지 않게 쌀쌀한 날씨다. 다람쥐는 움직일 기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나를 응시한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조금 있으니 안심이 되는지 자연스럽게 앉아서 계속 해바라기를 한다. 노련한 행동으로 봐선 이곳에서 새끼를 낳은 어미 다람쥐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영상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아기 다람쥐처럼 보인다. 확실히 잘 모르겠다.


다볕당 곁 졸참나무 그루터기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다람쥐(2021. 5. 3)


아래쪽 커다란 구멍 그루터기 위쪽에 한 마리가 나와서 잔뜩 웅크리고 꼬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무언가 먹고 있다. 영상을 확대해 봐도 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작은 부스러기가 흘러내린다. 두 볼이 빵빵하다. 겨우내 굴속에 저장해 둔 먹이를 꺼내서 먹는 것인지 어디서 주웠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람쥐가 먹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습관을 관찰해보면 좀 더 재미있는 공부가 되겠다.

다람쥐 굴은 아래쪽 나무의 큰 가지가 잘려 나간 그루터기의 커다란 구멍과 1미터 이상 떨어진 위쪽에 딱따구리가 판 것처럼 보이는 동그란 작은 구멍 이렇게 두 개다. 다람쥐들이 큰 그루터기 구멍으로 들어가서 위쪽 동그란 작은 구멍으로 나오는 걸로 봐서는 나무 안쪽이 썩어서 연결된 것 같다.

조금 있으니 동그란 위쪽 굴에서 다람쥐들이 나와서 또 움직이기 시작한다. 네 마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좋아라 하며 큰소리를 치니까 놀라서 서둘러 들어가버린다. 그도 잠시 한 마리씩 빼꼼 나와서 높은 졸참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간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오전 시간이다. 처음 갔을 땐 바람이 아주 조금이었는데 점점 거세게 일어난다. 작은 가지들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연초록 나뭇잎들이 찢어질 듯 한쪽으로 내몰린다. 다람쥐들도 집에 들어가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 졸참나무의 다람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집을 두고 살면서 오히려 보호받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아침, 저녁이나 밤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 상림에서는 고양이들이 다람쥐의 거의 유일한 천적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상림에서 다람쥐가 거의 멸종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상림을 사랑하는 지역 원로들이 다람쥐를 사다가 잘 살아라고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다람쥐들도 그 후손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상림에서 다람쥐들이 새끼를 키우며 계속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기쁘다.

다볕당 곁 졸참나무 굴에는 어미를 포함해서 다람쥐 네 마리가 살고있는 것 같다. 어린이날이라 사람들이 아주 많이 붐비는 데도 다람쥐들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아기 다람쥐들은 털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고 고웁다. 아주 귀여워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쳐다보면 환호를 한다. 상림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풋풋하고 밝게 풀어주는 다람쥐는 상림의 생태계를 빛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20210711

작성자 ; 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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