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류와 견과류 이야기
설치류라는 명칭은 라틴어 동사 ‘갉아먹다’에서 왔으며, 설치류가 이빨로 씹는 방식과 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앞니를 모두 일컫는다. 이 이빨은 대략 6천만년 전 쥐나 다람쥐처럼 생긴 작은 동물에서 진화되었다. 콘크리트나 플렉시 유리, 판금, 그 밖에 인간이 만든 소재 중에서 오늘날 쥐나 생쥐가 이빨로 뚫는 그 모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로부터 약 6천만 년 전의 일이다. 설치류의 정확한 유래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아직 논쟁이 오가지만 저 커다란 이빨이 무슨 일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이 없다. 설치류의 가계도에는 이빨로 나무를 갉아먹는 비버나 이빨로 땅을 파는 벌거숭이 두더지쥐 같은 괴짜도 있지만 대다수 설치류는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생활의 많은 부분을 꾸려 가는데, 그것은 바로 씨앗을 갉아먹는 것이다.
설치류가 나타나기 전 오크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등등의 조상은 날개가 달린 작은 씨로 그럭저럭 번식을 해결했으며, 이 씨를 깨물어 먹지 못하도록 보호할 만한 수단이 별로 없었다. 이런 씨앗 화석들을 보면 울퉁불퉁한 왕겨 부스러기처럼 생겼으며 씨앗에 보잘것없는 작은 조각이 붙어 있어서 나무에서 떨어질 때 살짝 펄럭이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설치류가 갉아먹기 시작하면서 이들 식물과 설치류 포식자는 사실상의 무기경쟁에 돌입했다. 이빨이 강해지면 씨껍질이 단단해졌고 씨껍질이 단단해지면 다시 이빨이 강해지면서, 오래된 저 씨앗들은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도토리와 두꺼운 껍질의 견과류로 바뀌어 갔다. (다른 씨앗은 이전보다 크기를 아주 작게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동물에게 통째로 삼켜지거나 아니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입장에서 볼 때 설치류는 진화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씨앗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반면 씨앗을 완전히 잃어버릴 가능성도 존재했다. 설치류의 입장에서는 씨앗 속에 든 영양분을 꺼낼 수 있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진화상의 금광을 발견한 셈이었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수가 많고 다양한 집단으로 빠르게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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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강한 턱의 설치류와 껍질이 두꺼운 씨앗이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에 벌어졌던 이야기고 단지 화석 기록상에 전반적인 단서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둘이 동시에 갑자기 부상한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대체로 서로의 관계가 발달되는 경우 이 관계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다. 갉아먹는 자는 먹을 것을 얻고 이 과정에서 식물의 씨앗을 퍼뜨렸다. 이 등식에서 설치류 쪽의 추동력은 오로지 배고픔뿐이지만 식물의 경우는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시앗을 다 먹어치우는 일이 없도록 껍질이 딱딱해야 한다. 껍질이 단단하면 설치류는 어쩔 수 없이 씨앗을 다른 곳으로 가져간 다음 굴 같은 안전한 곳에서 씨앗을 갉아 속을 연다. 이상적인 경우는 설치류가 씨앗을 어디 숨겼는지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먹을 시간이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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